결국 아빠는 최악의 판정을 받았다.
병원에서 약조차 처방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결국 치료할 수 있는 약은 없고 최대한 면역력을 올리고 컨디션 관리를 잘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난 아빠에게 약이 없는 상황에서 나아지려면 아빠가 어제까지 살던 삶을 다 버려야 한다고 했다.
아빠는 내 말이 맞다고 했지만 바뀐 것은 없었다.
부모님 댁에 가면 방 한켠에 있는 내 추억 상자를 열어보곤 한다.
그 상자 안에 내 일기장, 받은 편지들이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쓴 일기장을 봤다.
나는 고등학생 때도 감정도 풍부하고 걱정도 많고 생각도 많았다.
쭉 읽다보니 당시에 내가 갖고 있던 장점은 튼튼한 강점이 되었다. 그리고 이 세상에 하나뿐인 독특하고 아름다운 나만의 색깔은 그때 싹을 틔워 지금 더 강해지고 진해졌다.
그리고 내가 했던 걱정들은 해결이 되거나 전혀 달라졌지만 결과는 훨씬 더 좋았다.
그리고 일기장에 적어둔 아빠에 대한 부분이 있었는데 그 내용이 많이 인상깊었다.
아빠는 정말 아주 약간만 달라졌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 아빠를 힘들 게 하는 것들이 그 때도 있었다.
아빠는 아빠를 갉아먹었던 것들을 계속 갖고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
그래서 몸이 아픈 지금까지도 몸을 제대로 보살필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많이 다친 상태이다.
정말 속상한 것은 아빠의 마음을 다치게 한 사람은 아빠 자신이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할머니의 영향이 가장 컸지만 아빠는 그걸 극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빠가 알아차릴 수 있었다면 조금 더 마음이 편했을텐데..
몸을 아파가며 마음의 고통을 지우려는 것보다
마음을 바라보며 치유의 길을 걸으면 좋을텐데..
아플 때는 ‘아픈 나’만 보이는 걸 나도 너무나 잘 알아서 아빠를 탓할 수도 없었다
할 일도 많았지만 부모님을 보는 게 괴로워서 최대한 일찍 서울에 올라오고 싶었다
서울에 있으면 부모님을 못봐 괴롭고
고향에 있으면 부모님을 봐야 해서 괴로웠다
그리고 집에 와서 좀 울고 생각을 정리했다
어쨌든 내가 운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아빠가 원망으로 아파할 수록 나는 더 감사하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기로 했다
지금처럼 잘 살고
잘 살아가는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아직 아빠가 내 곁에 있어줘서 감사하고
엄마는 그런 아빠 곁에 상처받으면서도 아빠를 살갑게도 챙긴다
그리고 오빠도.. 오빠도 부모님 곁에서 최선을 다하고 나에게도 위로의 말을 아끼지 않아줬다
그 어느 때보다 가족 사랑을 아주아주 크게 느끼고 있다
요즘 밤마다 거울에 붙여놓은 어릴 때 찍었던 가족 사진을 오랫동안 보면서 가족들 한명한명 불러보기도 하고 내 사랑이 전해졌으면 좋겠다던지, 내 사랑으로 조금이라도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아무리 힘들어도 난
아빠가 내 아빠여서 너무 좋다
엄마가 내 엄마여서 너무 감사하다
오빠가 내 오빠여서 너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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