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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travel/Jeju

행복은 제주에::제주일기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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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유비가 오늘 오는 것이 어떠냐고 해서 바로 비행기표를 사서 공항에 갔다. 공항에서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찾아가는 나를 발견하고 그 동안의 추억들이 떠올랐다. 이륙 5분 전에 겨우 탔던 날도 있었고, 늦은 줄 알고 죽상으로 갔는데 알고보니 한시간 넘게 일찍 도착해 허무한 적도 있었다. 오늘은 아주 적당한 시간에 도착해서 책 몇장을 읽었다. 마음이 편안하고 좋았다. 좀 더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어른이 되어야겠다.



겨울 제주에 왔다. 비가 내렸다. 102번 버스는 배차간격이 넓어서 많이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시간을 확인하고 화장실이나 가려고 했는데 버스정류장에 가자마자 102번 버스가 왔다. 유비를 더 빨리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어두운 세상에서 빗물에 번지는 불빛들을 구경하면서 빗소리를 들었다. 우산이 없어서 유비가 정류장까지 마중을 나왔다. 포옹은 집에 가서 하자고 했지만 내가 안아달라고 떼써서 정류장에서 한번, 집에 도착해서 한번 진한 포옹을 했다. 너무 보고싶었다고 호들갑을 떨며 꽉 안았다. 같이 우산을 쓰고 집에 걸어가면서 유비는 조잘조잘 그동안 제주가 어땠는지 이야기해주었다.



집에 도착하니 유비의 애인 J가 있었다. 유비와 J는 배고픈데 내가 올 때까지 밥을 먹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먹어도 괜찮다고 했는데 내가 올때까지 기다려줬다. 요리천재 유비의 음식을 먹으니까 내 마음의 허기가 채워지는 것 같았다. 정말 맛있고 행복하게 먹었다. 메뉴는 된장찌개와 호박무침, 유비 어머니가 만드신 갓김치. 그리고 이름모를 딱딱하지만 맛있는 튀김?이었다. J도 요리를 잘한다길래 그럼 다음부턴 너의 요리를 먹어보자고 했는데 유비가 약간 서운해했다. 요리천재라고 할때는 언제고 J가 요리를 더 잘할 것 같다고 하냐고 이제 자기는 요리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유비가 늘 요리하면 힘들까봐 장난식으로 이야기한거라 바로 아니라고 취소하겠다고 사과했다. 그렇게 대화와 웃음이 반찬이나 조미료가 되어주고, 식사자리가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가니쉬가 되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양치를 하고 서울집에서 챙겨온 수면바지를 꺼내 입었다. 유비가 우리 둘이 커플같다며 좋아했다. 내 수면바지에는 토끼가 그려져있는데 내가 오늘따라 토끼같다고 했다. 나한테 고양이상이라며 했는데, 고양이도 있고 토끼도 있는데 오늘은 토끼가 더 가깝다고 했다. 생긴건 고양이인데 하는 짓은 강아지라고 했다. J는 토끼가 더 가깝다고 했다. 관종인 나는 부끄러워하면서 좋았다. 유비는 항상 나를 예뻐해주고, 예쁘다고 표현도 잘 해주는 고마운 친구다. 유비가 하는 말을 마음에 잘 담아두고 자주 꺼내봐야겠다.



나랑 같이 조립한 스텐드와 신발장을 기억하지 못하고 우리집 많이 바뀌지 않았냐며 자랑하는 유비가 귀여웠다. 집은 더 유비스러워졌고 아름다웠다.

J는 추리닝 위에 자켓을 입더니 온라인 수업하러 방으로 들어갔고, 유비와 나는 김사월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리고 유비처럼 사랑스러운 제주에 있는 유비의 지인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그 지인들은 나와의 인연도 있거나 전부터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친근하고 정겨웠다. 유비는 과외를 하는데 과외학생에게 선물받은 드림캐쳐, 과외학생의 딸이 그린 그림, 과외학생에게 선불받은 일본차가 있었다. 나는 그 차를 유비의 도예선생님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찻잔에 마시는 호사를 누렸다.

밥을 너무 많이 먹어서 배부르다던 유비는 내가 서울에서 가져온 찰떡을 먹었다. 그 떡은 우리 큰아빠가 유기농으로 농사지은 찹쌀로 만든 떡이다. 어느날 내가 떡먹고 싶다고 하니까 엄마가 그 다음날 바로 떡집에 그 찹쌀을 들고 가서 만들어서 당일에 바로 고속버스 택배로 보내준 떡이기도 하다. 나는 정성과 사연이 있는 음식을 좋아하는데 그래서 이 찰떡도 좋다. 좋아하는 찰떡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것은 더 좋다.

수업을 끝낸 J는 우쿠렐레를 가져와 영화 Her ost인 The moon song을 불렀다. 나는 미쳤다는 말만 반복했다. Her는 내가 세번째로 좋아하는 영화다. 그리고 이 영화의 ost는 너무 좋아서 몇년을 거의 백색소음처럼 들었다. 게다가 최근에 또 이 영화를 봐서 9월달에 쓰기 시작한 영화 감상문을 최근에 다시 쓰고 있던 와중이었다. 이미 행복하다고 서른번쯤 이야기한 것 같은데 몇번을 더 말해야 했다. 유비는 우쿠렐레 연습을 하다가 금방 흥미를 잃었고 나보고 해보라고 했다. 기타도 안친지 너무 오래돼서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는데 한시간 넘게 쉬지않고 연습하니까 겨우 겨우 반복되는 약간의 코드를 연주할 수 있었다. 제주에서 처음으로 혼자 잤다. 늘 유비가 옆에서 같이 잤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J에게 유비를 빼앗긴 기분도 묘하게 들었다. 그래도 혼자 자니까 새벽에 일어나도 미안할 일도 없고 자유롭게 움직이고 밖으로 나가지 않고 방에서 명상도 해서 좋았다. 몇 가지 꿈을 꾸고 다섯시 반쯤 일어났다. 좋은 문장이 생각났다. ‘행복은 나에게서 흘러나온다.’

Happiness flows from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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