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ow to travel/Jeju

행복은 자연에::제주일기 16

반응형



어제 좀 일찍 잤다고 4시 반에 일어났다. 너무 일찍 일어난 것 같아서 눈을 감고 6시까지 조성진 연주를 들었다. 일어나 명상을 하고 스트레칭을 하고 일기를 썼다. 좀 피곤했다. 좀 더 잤으면 좋았을텐데.

8시에 깨워달라는 유비를 깨웠다. 유비는 날 보고 “잘잤어?” 라고 물었고 잘 잤다고 하니까 “잘했어.”라고 했다. 잘했다는 말이 참 좋았다. 마치 아주 어렸을 때 기저귀에서 스스로 용변을 보는 단계로 진화했을 때 엄마에게 들었던 칭찬같았다. 달콤한 아침에 부엌에 앉아 바다를 보면서 남은 된장찌개에 밥을 말아 먹었다. 어제와 달리 식욕이 돌았다. J는 아침부터 집에서 구수한 냄새가 나니까 진짜 할머니집에 온 것 같다고 했다.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다. 햇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바람은 강하게 불지만 산책하기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유비는 서울에 갔고 J와 동네 산책을 했다. 수없이 했던 산책이지만 매번 새롭고 매번 좋다. 산책하면서 “너무 좋아.” “행복해.”를 연발했다. 나는 J에게 어제 밤에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내용을 들은 J는 아버지가 불교철학을 깊이 있게 공부하셔서 그런 류의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면서 '이치에 맞는 헛소리'였나 '일리있는 헛소리'라고 했고 우리는 엄청 웃었다. 그리고 나는 본인이 직접 경험하기 않고서는 그렇게 생각하는게 맞는 것 같다고 했다. 그 깨달음이라고 하는 말들은 경험하기 전에는 ‘이정표’같은 거고 내가 직접 경험해야만 그 ‘길’이 나의 길이 되는거라고 말했다.



매번 바닷가 주변을 산책하다가 이번에는 동네 구석구석까지 다녔다. 사실 동네 구경도 이미 몇번 해봐서 새로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느낀 것은 늘 새롭고 경이롭고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색을 가진 적양배추와 콜라비가 밭에 한가득이었다.



한참을 산책하고 돌아왔다. J가 읽는 중인 책을 훓어보다가너무 일찍 일어난 나는 10분만 자겠다고 해놓고 30분을 잤다. 내가 잠든 사이 J는 마트에서 장을 봐서 떡볶이를 만들어줬다. 말을 하진 않았지만 저번주부터 만두 다음으로 떡볶이가 너무 먹고싶었다. 그래서 선물같은 밥상이었다.



밥을 먹고 근처 작은 숲에 갔다. 내가 서울에서 계속 바라던 딱 그런 숲이었다. 푸르름과 건강함이 뒤섞인 숲이었다. 조용하면서 시끄러운 숲. 걸을 때마다 숲이 주는 안락함과 상쾌함이 내 몸으로 흡수되는 것 같았다. 나는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했고 진짜 눈물이 조금 났다. J는 숲의 움푹 꺼진 부분이 좋다고 했다. 포근하고 안아주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얀 털이 달린 예쁜 씨앗도 보고 더할나위 없이 조화로운 색을 가진 낙엽도 봤다. 나는 J에게 낙엽을 보라고 너무 아름답다고 했다. 그리고 J는 그렇다고 답했다. 나는 낙엽을 보면서 자연과 낙엽처럼 나도 아름답게 늙고싶다고 했다. 그리고 이어서 “왜 인간은 자주 추할까”라고 했고 J는 말이 없었다. 한참 침묵 속에 숲일 걷다가 추하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만든 것 같다는 대답을 해줬다. 간간히 맡아지는 솔내음에 내가 소나무를 보고 반가워하자 J는 제주에는 원래 소나무가 많았는데 전염병이 돌아 지금은 20퍼센트정도만 남아있다고 했다. 그리고 몇년 만에 다시 온 제주에 소나무의 빈자리를 느끼고 쓸쓸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J가 되어 잠시 상상한 나도 쓸쓸해졌다.



숲 근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쓴 시를 읽으며 한참을 웃다가 한담해안산책로에 갔다. 날씨는 따뜻했지만 바닷가 근처에 가니 강한 바람이 불었다. J는 겨울 바다가 좋다고 했다. 강한 바람이나 압도하는 듯한 파도가 스스로가 이 거대한 우주의 일부일 뿐이라는 걸 깨닫게 해준다고 했다. 나는 우리 아빠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아빠는 산을 너무 사랑하는데 산 속에 있으면 그 경이로움때문에 아빠가 가진 걱정들이 아주 사소한 것처럼 느껴져서 좋다고 했다. 바람이 아주 강하게 불었고 나의 긴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렸다. J는 제주 도민이라면 머리카락을 넘기지 않고 그냥 다닌다고 했다. 나는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릴 때마다 "나 제주도민 같지."라고 했고, J는 웃으며 그렇다고 했다. 하루종일 숲과 바다에서 행복하다고 외쳤다. J는 유비와 내가 무엇을 할 때 본인이 행복한지 잘 아는 것 같아서 그걸 보고 배운다고 했다. J는 자신이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잘 몰랐다며 그것을 아는 것은 좋은 일인 것 같다고 했다. J는 감정에 둔한 편이고 나는 풍부한 편이라 다 재각각의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노을이 너무 예뻐서 멈추고 새소년의 난춘을 들었다. 날씨가 정말 봄처럼 따뜻해서 21년 봄을 맛보기라도 하는 섯 같았다. J도 난춘을 들으니 봄을 기다리는 것 같다고 했고, 여러번 반복해서 들었다. 나는 해가 질 때 노란 빛이 바다를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게 너무 좋다. 한참을 바다를 구경했다. 지는 해는 너무 아름답다. 내 생명의 불씨도, 내 고통이나 마음도 아름답게 저물었으면 싶었다.



집가는 길에 오지힐을 들렸다. 식빵과 깜파뉴, 치아바타가 비건이다. 손님이 아무도 없어서 편하게 하늘이 어두워질 때까지 머물렀다. J와 즐거운 이야기를 많이 했다.



집에 돌아와 유비를 기다렸다. 유비는 서울에서 도너츠를 사가지고 돌아왔다. 고난스러웠을 유비를 꽉 안아줬다. 유비는 바로 수업을 해야했고 난 J가 서점에서 산 최태석셰프의 책을 읽다가 영화 줄리앤줄리아를 봤다. 줄리아 차일드는 실제 인물인데 너무 사랑스러웠다. 저세상 탠션에 밝고 귀여웠다. 졸린 와중에 꾸역꾸역 다 보겠다며 실눈을 뜨고 행복했다.

반응형

google-site-verification=mokmFsyzCDBHq6Kqs6nwJ6ZtJrUW4c9he_9YRIJoVg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