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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travel/Jeju

내가 남긴 흔적들::제주일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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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 보기 딱 좋은 시간에 눈을 떴는데 역시 하늘이 심상치 않았다. 괜히 설레는 오묘한 색이었다. 벌떡 일어나서 바다로 갔다. 오늘 태양은 분홍빛이다.

동영상을 이리저리 찍었다. 너무 아름다워. 오늘의 태양이 가장 좋다. 아주 오랫동안 태양이 올라오는 모습을 지켜봤다. 시원한 아침 공기가 태양에게 인사하고 사라진 뒤 따뜻한 공기가 불었다. 오묘한 분홍색 하늘이 푸르르게 바뀌면 나는 책을 읽으러 나선다. ub가 추천해준 책을 읽고 있다. 거의 다 읽어서 서평을 쓰려고 한다. 내 속도에 맞춰진 여행은 내 감정에 집중할 틈을 만들어낸다. 그 여유가 이렇게 기록으로 이어졌다. 제주 이전에 했던 여행은 엄마와 함께한 다낭 여행이었다. 엄마는 내가 여행지에서 책을 읽거나 일기 쓰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여기까지 와서 하나라도 더 구경해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엄마가 잠든 저녁이나 아침 일찍 일어나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했다. 지금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무늘보처럼 아무것도 안 해야지 하면서 하고 싶은 걸 한다.


5일장에서 산 복숭아를 썰어서 두유요거트에 치아시드와 바나나, 조청을 넣고 한입 가득 먹었다. 평소보다 늦은 아침을 먹어서 그런지 ub와 나는 아침을 먹으면서 점심을 뭘 먹을지 이야기했다.
"우리 원래 제주된장 너무 맛있다고 된장찌개 만들기로 했잖아"
"나 근데 파스타 먹고싶어"
"그럼 된장에 가지넣고 두유크림파스타 만들까"
"역시 넌 요리 천재야"
"언제 먹지? 수영갔다가 먹을까?"
"만들다 보면 배고파지고 그러면 또 맛있게 먹지 않을까"
"그건 그래"


 

ub가 만들어준 가지된장파스타

 


나는 단호박 손질과 빨래를 담당하고 ub는 가지된장파스타를 만들었다. ub는 다 만들고 나서 이 더위에 이런 요리를 하다니 스스로가 미쳤다고 했다. 더위 먹어서 맛이 안 느껴진다고 냉장고에서 와인을 꺼내 마시더니 괜찮아졌다고 행복하다고 했다.


 

 


그렇게 뜻밖의 브런치를 먹고 예전에 ub가 살던 카페에 갔다. 바로 앞에서 바다 수영을 할 수 있게 잘 갖춰진 곳이었다. 그곳에서 수박주스를 시켜놓고 바다 구경도 하고 바다수영도 했다. 접영 연습을 많이 했다. 다니던 수영장이 또 폐쇄될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서울은 다시 코로나 확진자 수 증가로 곳곳이 다시 폐쇄되고 있다. 돌아가기가 무서워졌다. 감염에 대한 공포도 무섭지만 혼자 고립되는 단절이 두렵다. 친구도 맘편히 만날 수 없고, 연락으로만 소통하던 시간들이 물렸는데 그걸 또 해야 한다니 착잡했다.

아쉬운 마음에 한참을 바닷속에서 놀았다. 수심이 얕은 바다라 아이들이 많았다. 바닷물이 오늘따라 따뜻했다. 그런데 어느 쪽은 수온이 에어컨 바람처럼 차가웠다. ub는 용천수라고 했다. 바다 온도가 차가웠다가 따뜻했다가 뒤섞이자 피부에 감각이 깨어났다.

한참을 놀다가 나와서 조개를 주웠다. 작고 예쁜 조개껍질들이 있었다. 몇 개를 주워서 손바닥에 모으고 있는데 작은 남자아이가 내 주변을 기웃거렸다. 용천수가 나오는 차가운 물줄기에 발을 담그고 계속 조개껍질을 주웠다. 아까 그 남자아이는 친구들 몇 명을 데려오더니 여기 뭐 잡을 것이 많다면서 즐거워했다. 그 이야기를 듣던 ub는 아이들이 바다 생명들을 죽일까 봐 무섭다고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가서 다짜고짜 "너네 착하지? 여기에 있는 살아있는 것들을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내가 예쁜 조개껍질 줄게."라고 말했다. 애들은 애들이었다. "나는 이거!"를 외치더니 하나씩 조개껍질을 골라갔다. 세명의 아이가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조개들 1,2,3순위대로 골라서 다 가져갔다. 이럴 때 애들 눈은 정확하다싶다. 그리고 애들은 대충 잡히는 대로(모래도 안 털고 그냥 줌 ㅋㅋㅋ) 조개껍질을 주워서 나에게 선물이라면서 줬다. 그 모습을 구경하던 ub는 나에게 선생님 같다고 했다. 나 선생님인데.

수영을 하고 나와서 그늘 아래에서 바다를 구경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왔다. 이유는 모르겠고 그냥 울고 싶었다. 그런데 눈물도 잘 나오지 않았다. 이게 뭐지 싶어서 아무 말이나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것저것 이야기해보다가 또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꺼내놓았다. 오래전 내가 상담하던 학생이 자살을 했다. 그 경험은 큰 충격이었다. 그 아이가 또 생각났다. 주홍글씨처럼 늘 나를 따라다닌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에 대한 아픔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받는 상처가 더 아팠다. 사람들은 마치 슬픔에도 유통기한이 있는 것처럼 내가 힘들어하는 것을 지겨워했다. 나는 시간이 지나도 괜찮지 않은데 괜찮아야만 할 것 같다는 부담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괜찮아 보여야 주변 사람들이 안심하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힘든 내색을 하기가 어려웠다.

괜찮을 때가 더 많지만 안 괜찮을 때가 있다. 어제는 괜찮고 오늘은 괜찮지 않다. 오늘처럼 어느 날 불쑥 그 감정들이 올라오곤 한다. 바다를 보면서 실컷 울었다. 나는 그 기억들에 대해 후회하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또 다짐했다. 우는 내 손을 잡아주며 ub가 "고생했어."라고 말해줬다. 큰 위로가 되었다. 바다를 떠나면서 나는 유쾌하게 "잘 울고 갑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정말 잘 울고 개운했다.



 

 


제일 좋아하는 카페에 또 갔다. 또 인도커리를 주문했다. ub가 밥을 많이 달라고 했는데 진짜 많이 주셔서 다 먹느라 고군분투했다. 진짜 위가 찢어지는 줄 알았다. 밥을 다 먹고 나는 책을 읽고 ub는 일기를 썼다. 무더운 날씨에 뜨거워진 카페를 식히려고 사장님은 건물 지붕에 물을 뿌리셨다. 여름의 제주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물줄기마저 예뻤다. 고양이처럼 물줄기를 따라 고개를 이리저리 왔다 갔다 움직이는 우리를 보고 사장님은 웃으셨고, 우리는 우리가 고양이 같다며 웃었다.


 

 


주말에 육지에서 제주로 21만 명이 들어왔다. 인스타 스토리를 보니 많은 지인들도 제주에 있었다. 그중 한 친구가 오늘 시간이 되면 보자고 했다. 집에 들러서 샤워를 하고 친구를 만났다. 좋아하는 그 카페에 또 가서 테이크아웃을 하고 근처 바다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s는 사실 친한 친구는 아니다. s와 나는 고등학교 1학년 같은 반, 친한 친구가 곂치는 친구 정도였다. 밤에도 미치도록 예쁜 제주 바다를 보면서 즐거운 대화를 했다. 우리는 서로 비슷한 취향을 갖는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그 놀라움은 마치 우리가 이렇게 잘 통하는데 왜 이제야 그걸 알게 된 것인지 의아함에 가까운 놀라움이었다. s도 요가를 하고 등산도 좋아하고 아침형 인간인 데다가 문과스러운 아이였다. 그리고 s는 공감 요정이었다. 내가 무슨 말만 하면 그 말에 담긴 나의 기분을 알아봐 주고 이해해줬다. 우리가 나눴던 수많은 이야기 중에 하나만 풀어보자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좋은 책의 기준을 '종이가 아깝지 않은 책'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종이가 아깝지 않은 책을 쓰고 싶다고 했다. s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냐며 보통 사람들은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종이가 아깝다는 생각은 잘하지 않는다며 나를 좋게 평가해주었다. 대화는 끊기지 않았고 호들갑 대마왕인 나는 이런 대화를 해서 너무 좋다며 오늘도 호들갑을 떨었다.

s는 예전부터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고 했다. 나는 너무 놀라 "정말? 너랑 나랑 친하지 않았어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게 신기하다. 사실 나는 너를 무서워했어."라고 했다. s는 더 놀랍게도 내가 자기를 무서워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나는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17살인 고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우리는 같은 반이었고 s는 부반장이었다. 체육대회인가 학예회인가 아무튼 무슨 행사가 있어서 부반장으로서 반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들 돌린 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나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내가 s에게 아이스크림을 받고서 다른 맛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s는 우선 다 나눠주고 남는 게 있으면 바꿔주겠다고 말했다. 인성 쓰레기였던 나는 s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 아이스크림을 버렸다. 그래서 s는 우리 엄마가 피땀 흘려 번 돈으로 산 아이스크림을 어떻게 버릴 수 있냐며 나와 다퉜다. 나는 정말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고 내가 정말 그랬냐며 진짜 나빴다고 이제라도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너무 창피하고 미안해서 엉덩이가 자꾸 들썩거렸다. 그리고 그 후에 화해하지 않고 지내다가 몇 달이 흐르고 s의 생일이 다가왔다. 같은 반 친구 a가 내가 전해주랬다며 선물과 편지를 전해줬다. (부끄럽지만 s의 표현을 빌리자면) 편지에는 17살에게는 나올 수 없는 깊은 생각이 담겨있었다고 했다. 그 편지를 읽고 내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s는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편지를 통해 내가 얼마나 무례했으며 s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됐을지에 대한 미안함을 전했고, 반성하고 있고 생일을 축하하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 그게 고마웠다고 했다. 그 얘기를 하면서 나는 다시 한번 사과를 했다. s는 열일곱이지 않았냐며 그때는 모두가 철이 없었다고 쿨하게 내 사과를 받아줬다. 나는 그때도 편지 쓰는 걸 좋아했구나 싶어서 웃겼고, s는 내가 정말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 웃겨서 웃었다. 오래된 관계가 좋은 이유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일부를 상대가 기억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s가 잊고 있던 s의 분홍색 키티 팔토시를 기억하고 있었다. 열일곱의 나를 보게 되면서 내가 만나는 학생들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별것 아닌 것들로 쉽게 상처 받는 아이들을 더 이해하게 됐다. 나에게 어린 시절이 없었고 처음부터 성숙한 어른인 것처럼 굴었던 게 부끄러워졌다.

집으로 돌아와 잠든 ub 옆 침대로 갔다. ub는 잠꼬대로 잘 왔다고, 잘했다고 (뭘 잘했다는 건지..?) 내 어깨를 토닥여줬다. 귀여운 잠꼬대에 또 마음이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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