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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travel/Jeju

행복한 할머니::제주일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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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평소보다 늦게 6시 20분쯤 일어났다. 새벽부터 자다 일어나고 다시 잠들었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첫날부터 하루 종일 바다에서 수영을 했고 몸 뒷면이 다 탔는데 아주 새빨갛게 익었다. 새벽에 등이 쓰라려서 깼다가 다시 잠들었지만 다시 등이 아파서 깼다. 그래서 일출 보는 것을 포기하고 더 잤다. 수면에 관한 책에서 중요한 것은 수면의 총량이 아니라 '지속적인 수면의 총량'이라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일출은 못봤지만 바다는 보러 나갔다. 귀여운 파도들이 육지로 육지로 퍼져 들어왔다. 오늘은 아침 일찍 세화 5일장에 갔다. 5일장은 매 5일, 10일마다 열리는 시장이다. 작지만 정갈한 시장이었다. 오밀조밀 귀여운 과일들, 푸르른 채소들이 바구니에 가지런히 담아 있었다. ub는 편하게 입을 트렁크 팬티를 사겠다고 했다. 트렁크 팬티를 이리저리 보면서 구경했다. ub는 시장 상인들에게 '선생님'이라고 했다. 그 모습이 다정하고 예뻐 보였다.

 

 



시장에서 복숭아도 사고 단호박도 사고 호박식혜와 빙떡도 사먹었다. 빙떡은 메밀반죽(?)을 얇게 펼치고 그 안에 무 무침 같은 것을 둘둘 말아먹는 음식이다. 기름판에 기름을 무치는데 평평하게 자른 무로 기름칠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빙떡 집 사장님은 무로 기름칠하는 것이 제주 전통 스타일이라고 하셨다. 뭐든 약간씩 느린 나는 빙떡을 살 때도 사진을 찍고 먹을 때도 조급했다. 옆의 ub가 이거 하자, 이거 먹자고 (내 기준) 빠르게 말했기 때문이다. 그건 그냥 ub의 속도이기도 하고, 나의 느림이 ub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나는 괜히 미안해하면서 불편했다.


시장에서 소나무로 만든 도마와 버섯모양의 귀여운 모자도 샀다. 가치 소비는 고민을 별로 안하지만 물건을 소비할 때는 신중해지는 편이다. 물건과 함께하는 삶보다 순간을 함께하는 삶에 더 가치를 두는 편이다. 모자를 살까 말까 고민하는데 ub가 정말 너무 잘 어울린다고 해서 세 번째 고민 끝에 구입했다. 통풍도 잘되고 햇빛이 잘 가려져서 좋다.

 

 



집에 돌아와 샤워하고 책을 읽다가 낮잠을 잤다. ub는 장봐온 가지와 제주 된장으로 가지 덮밥을 해줬다. ub의 별명은 요리 천재이다. 너무 맛있어서 오늘도 호들갑을 떨었다. ub는 어깨춤을 추면서 맛있게 먹는 내 모습을 보며 흐뭇해했다. 요리하는 사람으로서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다고 했다. 나도 요리하는 걸 좋아하니까 그 마음을 잘 알 것 같았다. 제주 된장이 정말 너무 맛있었다. 먹는 양이 적은 편인데 더 먹고 더 먹다가 엄청 많이 먹어버렸다. ub는 내가 잘 먹어서 좋다고 했다. 후식으로 복숭아를 먹었다. 우리는 복숭아 향을 맡고 여기가 천국이라고 했다. 빨래를 널고 청소기를 돌리고 책을 읽으며 여유를 부리다가 내 최애가 되어버린 카페 깃든에 갔다.

 

 




사장님 부부의 미소를 보니까 행복했다. 나도 저런 미소를 가지고 싶다. 어느정도 나이가 들면 그 사람의 얼굴에서 인품이 보인다고 한다. 인자한 미소를 가진 행복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카페에서 ub는 읽던 책의 서평을 쓰고 나는 책을 읽었다. 카페에 갈 때 ub의 갈색 원피스를 입었는데 나에게 잘 어울린다며 날 주겠다고 했다. ub는 제주에 챙겨 온 옷도 별로 없으면서 나에게 줄 생각을 한다. 잘 어울리는 건 인정하지만 괜찮다고 했다. 어제의 거절이 미안했는지 오늘따라 ub는 내 모습을 많이 찍어줬다. 해가 지려고 하는 7시 반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단호박을 쪄서 조청을 뿌려 먹었다. 또 향을 피우고 침대에 벌러덩 누워 에어컨 아래에서 여기가 천국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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