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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see/Diary

한 해를 돌아보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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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생활을 하고 삶이 많이 달라졌다.

대학원에 가기 전에는 글을 언제나 썼지만 1년 동안 거의 쓰지 않았다. 

늘 책이 내 곁에 있어야 했는데 이제 책 대신 읽어야 하는 전공서적과 논문에 허덕인다. 

블로그에 자주 들어와 사소한 내 흔적들을 올렸지만 올리지 않는다. 

아주 가끔씩만 하던 육식을 이제는 가끔씩 한다. 고기의 비릿함을 올해 다여섯 번 정도 느낀 것 같다. (좀 끔찍한 경험이었다.)

사는 공간, 만나는 사람이 다 바뀌었다. 추억이 더 생겼고 조금 더 늙었다. 

 

분명히 블로그에 들어오기 전에는 밀린 일기가 너무 많았다. 막상 들어와 적으려 하는데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한참을 아무 것도 적지 못하다가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밀린 걸 쓰려고 하니까 잘 써지지 않은 것 같았다.

가장 최근의 생각을 적어야겠다. 

 

대학원에 와서 상담공부를 하다보니 상담에 대하여 그리고 상담을 하는 나에 대하여 전에는 해보지 않은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처음에 내가 어떤 마음으로 상담 공부를 시작했는지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상담가가 되고 싶은지 생각해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수련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막연히 해야하는 상담 공부가 아니라 나 문제를 다뤄가면서 끝없이 배워야 하는 내 삶에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초심상담자였을 때 만난 내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거의 동시에 아주 오래도록 좋아했던 사람과 이별을 했었다. 지금은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난 여전히 문득 슬프고 그 슬픔에 갇힌 기분을 느낀다. 얼마 전의 수퍼비전에서 죽은 내담자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했었다. 그런데 막상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 그 내담자에 대해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나는 오랫동안 그 내담자에 대해 자세히 기억하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 같다. 그리고 헤어진 그 사람을 더 이상 사랑하지도 않고 다시 만나고 싶지도 않으면서 죽음이나 이별에 대해 자극을 받으면 그 사람을 떠올리고 슬프고 눈물이 났다. 아주아주 행복했던 어느 날 문득 그 두 사람이 생각나서 운 적이 있다. 얼마 전의 수퍼비전이 끝난 이후에 나의 상처를 천천히 보았고 나는 그 때 건강한 애도를 하지 못하고 외상 후 스트레스 반응에 대한 적절한 개입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아팠다. 그때도 지금도 아픈 것 같다. 

 

내가 이 아픔에서 바라는 것은 상처를 잘 돌보고 내 상처를 잘 흘려보내어 '상처입은 치유자'가 되는 것이다. 여러가지의 이유로 인해 내 상처가 잘 아물지 않은 채 상처입은 치유자가 되려고 노력했다. 이런 저런 생각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내 상처를 완치할 수는 없으니 열심히 나를 돌보며 내담자를 만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말 이 방법 밖에는 없다. 

 

 

삶이 무한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열심히 사는 것인데 상담에서도 각각 회기가 의미가 있는 것인 것이라고 지도교수님이 말씀하신 적이 있다. 지금 만나는 내담자들과 앞으로 만나게 될 내담자들, 그리고 오늘의 나와 미래의 나를 살뜰히 돌보며 이들의 건강과 행복을 진심으로 바랄 것이다. 겨울방학동안 연구방법론을 공부하고 밀린 상담일지와 수련수첩을 쓰면서 논문 주제를 잡아야 한다. 겨울방학에도 나의 상처를 잘 돌보고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않으면서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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