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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see/Diary

사랑이 고프고 두려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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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엄마아빠와 시간을 보냈다
아빠는 좀 회복된 것 처럼 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사실 아빠를 마주하기가 어려웠다
아빠에게 시간이 진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될까봐 두려웠던 것 같다
아빠가 진단을 받고 난 후부터 아빠를 만나면 꼭 눈물이 났다
그 슬픈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다양한 방식으로 회피했다
내가 태어난 해에도 아빠는 그 위험한 히말라야에 갔으니까
아빠 없이 살아갈 인생이 있다는 사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알았지만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알았다는 것은 아무 소용 없었다
내 마음은 자꾸만 와르르 무너졌다

평소처럼 지냈다
마음은 평소같지 않았다
역시나 방학이 얼마남지 않아서 힘든거라고 생각했는데 학기 말이라 힘든 것도 맞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미루고 미루다가 엄마아빠를 만났는데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사랑하기도하고 밉기도 했다

엄마아빠는 새롭게 시작한 시골 라이프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도시에 있는 집 보다는 시골집에 머무는 걸 더 좋아했다.
농사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열심히도 무언가를 심어뒀다.
그리고 아주 조금, 작게 열린 그것들을 따지도 않고 내가 올때까지 기다렸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감동 받았다가,
서울에 와서는 그 말이 자꾸 맴돌아서 눈물이 났다.
나를 기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를 그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울에 혼자 있으면 엄마아빠가 너무너무 보고싶은데
보고싶어도 아주 다채로운 이유들로 참는건데
엄마아빠도 나를 그리워한다고 생각하면 참는게 더 힘드니까.

고등학교 때 처음 엄마아빠와 떨어져서 기숙사에 살았는데
그때부터 늘 나는 엄마아빠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울었다.
유학을 갈 때는 비행기 안에서 울었고
요즘은 기차 안에서 운다. 어제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는
왠일인지 눈물 한방울 나지 않고 기분이 좋았다.
비가 내리는 그곳과는 달리
서울은 날이 너무 좋았고
빨리 옷을 갈아입고 요가를 가거나 런닝을 하고 싶었다.

요가는 시간이 늦어서 못가고
공원에 가서 뛰는데
눈물이 마구 났다. 어제는 괜찮은 게 아니라 늦게 터진 거였다.
왠일로 울지 않고 씩씩한가 싶었는데
나를 기다렸을 엄마아빠의 쓸쓸함을 혼자 생각하다가 갑자기 밀려오면서 벅찼다.
엄마아빠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표현이 서툰 분들임에도 너무나 잘 느낄 수 있어서 밉고도 사랑했다.
나를 적당히 사랑해줬으면.. 적당히만 사랑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아프니까.

집단 우울증이라 할만큼 주변에 마음이 힘든 사람이 너무 많아서
연락도 자주 오고
일은 엄청 많고
나도 좀 버겁고 힘들다.



엄마아빠가 매일 물을 주고 돌봐온 양배추와 바질, 고수, 상추로 샐러드를 만들어 먹었다.
속이 너무 편안하고 든든했다.
엄마아빠 손에서 자란 것들이라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럴수록 이상하게 더 불안해졌다.
이 찰나의 소중함은 정말 ‘찰나’라서
나를 그냥 스치고 지나가서 아주 오랫동안 이 순간들을 그리워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감사하기
현재에 머물기
불안함과 두려움의 실체를 바라보기
등등의 조언같은 생각을 열심히 하다가

지금 내가 느끼는 이것들도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아쉬탕가 수련을 포기하고
요가하고 집에 와서 일기를 끄적끄적

장마철에는 종종 해가 반짝 떴지만 동시에 굵은 비가 뚝뚝 떨어지기도 한다.
해가 뜨면 비가 올 순 없는 건데
사실 그렇지도 않다.
부모님을 만나고 돌아온 내 마음이 장마철의 그 해와 비 같다.

비가 잘못한 건 없으니까
비를 나무라지 않아야지

어서와 비야
머물고 싶은만큼 머물다가 가렴☔️
근데 빨리 가줄래? 할게 많단다 ㅋㅋㅋ

왔다갔다 또 속이 복잡했던
그치만 주저리 쓰고 나니 한결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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