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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see/Diary

두려움 없이 사랑하는 법::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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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계획으로 엄마에게 갔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엄마는 간식이라며 평소 내 밥보다 많은 양의 음식들을 내어주었다.
그 음식 속에 엄마가 넣어둔 사랑을 먹었다.

간식부터 풀 코스로 저녁까지 먹고
시골에 있는 아빠의 아지트(?)로 갔다.
아빠와 단둘이 시골집에서 하루를 묵었다.
아빠는 내가 왔다며 한기가 도는 집에 장작 나무로 불을 지펴주었다.
나무에 습기가 많아 불이 잘 붙지 않는다며 무려 그 추운 밤에 두 시간동안 밖에서 아궁이에 불을 피웠다.
난 그 두 시간 동안 하지 못해서 맴돌던 말을 길게 글로 적었다.
아빠는 집에 들어와 양치를 하면서도 보일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리고 수시로 바닥에 손을 얹고서는 바닥이 따뜻한지 확인했다.
나는 따뜻한 방바닥에서 아빠의 사랑을 느꼈다. 다음 날 아침 괜히 늦잠을 자고
아빠는 절대 움직이지 않은 딸을 놔두고 부스럭 거리더니 따뜻한 아침밥을 차려줬다.
나는 아빠의 사랑을 먹었다.

그 날은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책만 읽었다. 늦은 오후에 핸드폰은 두고서 산책을 다녀왔다.
아름다운 연못, 나무들, 구름과 하늘을 보았다.
입가에 웃음이 단내가 나는 듯이 가득했다.
동네 뒷산이지만 한참을 걸어 올라갔다.
지는 노을을 보면서 잠깐 가만히 서 있었다.
잠깐의 바람 소리 말고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자유 비슷한 것을 느꼈다.
해가 지기 전에 내려와 부지런히 집에 갔다.
아빠는 집에 없었다.
핸드폰에는 아빠의 부재중 전화가 찍혀있었다.
전화도 받지 않고 내가 혹시나 길을 잃었을까봐 걱정이 되어 나를 찾으러 간 것이다.
내가 다시 전화를 걸자 아빠는 덜컥 화를 냈다.
나는 그 화가 난 목소리에서 사랑을 발견했다.

이번에 부모님과 함께 있으면서 울컥하거나 뭉클했던 순간이 많았다.
부모님의 사랑으로 나를 가득 채운 것 같다.
매번 부모님을 만나고 나서 혼자만의 시간이 되면 눈물이 났지만,
혼자가 됐지만 울지 않았다.

그 대상을 온전히 알아차리면
어디서든 어떤 순간이든지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꽤 오랜 세월이 흘러서야 이제야 조금 엄마 아빠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것 같다.
끊어낼 수 없기로 암묵적인 약속을 한 부모-자녀 관계가 위안이 되는 순간들이었다.

어떤 사건이나 죽음이 이 관계에 끝이 있다는 것을 알려줄 것이다.
언제나처럼 모든 만남은 필연적인 이별이 있다.
나는 그 이별이 무서워 사랑을 발견하지 못하고 숨으려고 했다.
오히려 그 이별을 가장 앞 세워서 세상을 바라보니 모든 것에서 사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눈으로 바라볼 때, 굳이 사랑한다는 말까지 얹어서 함께할 때, 모든 순간이 소중해진다.
영원하지 않음을 통제하려고 하지 않으니 마음이 평화롭다.

사라지고 이별을 고할 것을 알면 무엇하나 특별하지 않은 것이 없다.
아슬아슬한 현존이 오히려 모든 것에 특별함을 부여한다. 이 배움이 오래도록 내 안에 맴돌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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