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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재미있게 읽은 책. 최근에 읽은 책중에 괜찮은 책.
이 책 전에 읽은 책이 <안나 카레리나>여서 인걸까 ㅋㅋㅋㅋ가볍지만 여운은 묵직한 좋은 소설이었다.
정세랑 작가는 민음사와 문학동네에서 편집자로 일하며서도 동시에 ‘덧니가 보고 싶어’, ‘지구에서 한아뿐’의 작가였다. 처음에는 판타지를 쓰셨는데 문학상이 필요해서 상을 받기 위해 <이만큼 가까이>라는 책을 썼다고 한다. 이건 마치 혁오가 부모님께 음악하는 것을 허락받기 위해 엔터 3사 오디션에 모두 통과한 일화같은 멋짐이랄까... 대단한 작가라는 느낌이 강하게 온다. 직장에 다니는 것처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일하고 주말에는 쉰다고 한다. 주로 오전에 새로운 분량을 쓰고 오후에는 짧은 에세이나 칼럼을 쓰고. 오후 늦게는 어제 쓴 글을 고치고, 저녁때는 책을 읽거나 남의 콘텐츠를 즐기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삶을 사신다고... 읽는 걸 너무 좋아하는데 왜 이렇게까지 써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한다는데 너무 공감되는 말이었다. 창작의 고통은 예상보다 강하고 책은 정말 남의 책이 최고라는 진리를 깨닫게 한다. 가장 자신과 닮은 작품으로 꼽는 건 <이만큼 가까이>라고 한다.
나에게 정세랑 작가님의 첫 작품은 <보건교사 안은영>이었다. 사실 <보건교사 안은영>은 별로였다. 학교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좋았지만 판타지적 요소가 어색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피프티 피플>은 2016.1~5월 창비 블로그에서 연재한 글을 묶어 책으로 옮겨서 출판한 것이다. 사실 50명이 아니라 51명의 등장인물이 등장한다. 책의 뒷부분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초기에는 18명의 에피소드만 쓴 채 연재를 시작했다고 한다.
주인공이 무려 50명인 독특한 구성으로, 각양각색의 인물이 고유의 에피소드를 가진다. 이런 연재라면 끝없이 쓸 수도 있겠다 싶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층간 소음 등 최근의 사회문제를 많이 다루고 있는데도 그런 주제 다룰 때 하나도 불편한 부분이 없고, 그 사회문제가 소설을 잡아먹을 것처럼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앞으로도 다양한 장르에 도전해서, 이쪽 동네에서 가장 이상한 거 많이 해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작가님의 다른 작품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 어떻게 읽었나?
세상 사람들과 조금씩은 연결되어있다. 는 나의 믿음이 소설로 표현된 것 같다. 그래서 반가웠다. 내가 느끼는 것을 작가님도 느꼈구나. 그 느낌을 이렇게 창의적으로 재능을 녹여 만들어냈구나 감탄했다.
너무 많은 주인공이 등장하기 때문에 <안나 카레리나>처럼 등장인물을 메모하며 읽어야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이 또한 아주 살짝씩 스쳐지나간 관계로 작가님의 의도에 맞게 그 인물에 대한 나의 이해 수준도 스쳐지나가게 내버려두고 읽는게 좋은 것 같다.
스쳐지나가게 표현하다보니 세세한 디테일이 많았는데 그 디테일에 공감가는 것이 많았다. 인물 하나하나가 다 기억에 나지는 않지만 "아 얘가 걔였지" 확인하면서 읽는 재미도 있다. 양이 적지만 인물 관계 파악하면서 읽느라 읽는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이 점도 좋았다. 너무 빨라서 일부러 천천히 하려고 하는 세상에 어울린다. 그리고 <보건교사 안은영>을 먼저 읽어서 그런지 작가님의 디테일에 믿음이 갔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학교를 묘사한 디테일이 정말 현실적이었다. 그래서 <피프티 피플>의 주 배경인 병원에 대한 디테일에 믿음이 갔다. 직업이 의사인 사람에게 읽어보면 좋겠고 읽어보고 어떤지 꼭 얘기해달라고 부탁해뒀다.
# 주 얘깃거리
Q.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이호’ 할아버지이다.
이호 할아버지는 의사인데 자신이 의사가 된 것을 포함한 모든 삶을 감사해한다. 무얼 이뤘건 모두 운 좋게 받은 도움들 덕분이었다. 이만큼 적시에 도와주려는 손들이 다가왔던 인생이 또 어디에 있을까 감탄하고 또 그걸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림을 그리던 아내를 만나 더 풍요로운 삶을 살면서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고 좋은 여운을 남기는 인물이라 좋았다. 내가 딱 이호 할아버지 같은 할머니가 되고 싶다. 이호같은 남자를 만나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친구가 고른 인물은 진선미이다. 진선미라는 인물은 자주 등장하는데 사실 진선미는 챕터가 따로 없다. 그걸 나중에 알게 되면 괜히 입 밖으로 “와 반전이다.” 말하게 된다. 작가는 진선미를 통해 이상적인 사람을 그렸다.
Q. 좋은 책의 기준
나에게 좋은 책은 ‘종이가 아깝지 않은 책’이다. 이 기준 안에 무수한 세부 기준이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내 기분이 기준이 되기 때문에 내 기준은 이렇다고 말해버린다. 책을 다 읽었을 때 이건 종이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좋은 책이다.
친구에게는 ‘친구에게 교훈을 주는 책’ 그리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책’이 좋은 책이라고 했다. 다양한 인물, 소재, 주제로 할 이야기가 많은 책이 좋다고 했다. 듣고보니 나도 그랬다. 특히 좋은 영화가 그랬다. 그래서인지 친구랑 나는 늦게 퇴근하는 바람에 밤 10시가 넘어서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한시간이 넘도록 얘기하도고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우리가 피곤하다는 것을 순간순간 잊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전화를 끊고도 기분이 좋았다. 이 책은 둘다에게 좋은 책이었던 것 같다.
Q. 190p. “사회생활을 오래하다보면 사람에 대한 기준을 각자 세우게 되잖아요?” 사회생활에서 내가 세운 사람에 대한 기준은?
이 질문에서 나는 MPTI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MPTI는 과학이라고 했다 ㅋㅋㅋㅋ 16곱하기 16 은 256이 아니냐며 다른 친구와 나눈 이야기에서 MPTI를 믿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MPTI에서 T(이성)/F(감성)으로 사회에서의 사람을 나누는 편이라고 했다. 친구는 T(이성)이고 나는 F(감성)이다.
내가 MPTI에 대한 정보가 오염이 많다고 하니까 친구는 사람들은 결국 보고싶은 것만 본다고 했다. 맞는 것 같다.
친구는 사회에서 만난 사람은 스쳐가는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브 앤 테이크’의 기준을 세우고 먼저 주고 상대에게 테이크가 없으면 그 이후부터는 기브를 멈춘다고 했다. 나도 비슷한 것 같다.
Q. 248p. ‘가벼운 호감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일들이 시작되는지.’ 가벼운 호감으로 인하여 좋은 기분/일을 느꼈던 경험?
나는 주로 나와 가치관의 결이 맞는 사람에게서 ‘가벼운 호감’을 얻는 것 같다. 비건과 환경이라는 주제로 만난 l과 U 그리고 J가 그랬다. 분명 친해진지 몇년이 되지 않았는데 나는 이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 사람들은 내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들이 되었고 나는 이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선물받았다. 예를 들면, 쏟아지는 별이 가득한 밤에 춤을 춘다던지, 말도 안되게 예쁜 요리를 먹게 된다거나, 하루종일 걷다가 행복해서 기절할 것만 같았던 추억들을 선물받았다.
Q. 317p. ‘연모는 가족들에게 그걸 자랑할 수도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할 때 가장 재밌는 그런 종류의 자랑이 있다.’ 나는 나만이 간직하고 싶은, 뿌듯한 자랑이 있는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금요일 저녁에 아빠가 퇴근하시면 바로 할머니집에 가야했던 일이 있었다. 저녁에 아빠를 기다리다리는데 엄마가 심부름을 시켰다.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엄마의 심부름을 하고 다녀오는 길에 어떤 할머니가 무거운 짐 옮기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다. 그래서 그 할머니를 도와드리고 집에 갔다. 이미 집에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던 아빠가 뭐하다가 이제 오냐고 혼을 냈다. 억울했을텐데 나는 기뻤다. 그리고 늦은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억울할 법도 한데 억울함을 호소하지 않고 담담히 혼나고 누구에게도 자랑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재밌었다.
Q. 이 책을 누구에게 추천하고 싶은가?
또래 아무에게나 추천해도 다 공감할 것 같다. 병원 관계자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설명이 잘 되어있기 때문이기도 한다. 근데 정말 그런지 궁금하네까 내 주변 병원 관계자들에 읽어보고 어떤지 알려줬으면 좋겠다 ㅎㅎㅎ
읽다보면 하루에도 무수히 나를 스쳐지나가는 이 많은 사람들도 잘 살고 있구나를 깨닫게 된다.
이 책을 시집처럼 읽었으면 좋겠다. 인물이 많으니까 시처럼 음미하면서. 기분 좋은 만족스러운 독서였다ㅎㅎ
<피프티피플> 발간 후 정세랑 작가 인터뷰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소설가⑤] <피프티 피플> 정세랑 작가, “젊은 사람들 편을 들어주는 할머니 작가가 되고 싶다” (cine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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