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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작성 2021. 4. 10. 00:15
내가 요가 지도자 과정을 시작하려는 이유와 수많은 지도자 과정 중에 아힘사를 선택한 이유 모두 ‘명상’때문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요가가 ‘움직이는 명상’이라고 생각했고 요가는 내 삶의 방식이라고 여겨왔다. 그런 내 생각과 결이 잘 맞는 것 같아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그래서 책 속의 대부분의 내용이 친숙했다. 명상을 할 때 숫자를 세는 수식관 등 명상 과제를 하면서 강한 거부감이 들었는데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알아차림은 관련 정보를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보다는 내가 그것을 실제로 경험하고 얼마나 와닿는 체험을 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우치는 중이다. 머리로 아는 수많은 정보보다 마음으로 몸으로 한 경험이 동반되어야 함을 배웠다.
내가 처음 명상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마음이 많이 아팠기 때문이다. 내 본연의 욕구와 감정을 뭍어두고 열심히 공부해서 합격했고 그 합격의 댓가로 잃은 정신적, 신체적 건강이 회복 되기도 전에 ‘사회초년생’이라는 딱지를 달고 현장에 내던져졌다(고 생각했다). 권위적인 관리자와 교묘하게 자기 업무까지 주면서 성희롱을 일삼았던 부장 교사,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죽고싶다고 찾아오는 아이들이 뒤섞이면서 나는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으니 신체 기능이 다 고장났다.
지독한 불면증과 함께 이틀에 하루걸러 몸살이 났다. 일을 시작한지 몇 달이 되지 않아 백기를 들고 정신과에 갔다. 수면제를 먹으면서 마음에 병을 고쳐보겠다고 찾아본게 명상이었다. 나는 살기 위해 명상을 시작했던 것 같다. 명상을 하면 마음의 평화와 함께 모두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나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결국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살아남았고 더 나아가 아주 잘 산다. 명상 덕분이기도 하지만 명상을 넘어 명상을 통해 발견한 깨달음들이 삶의 자양분이 되주어 잘 살게 된 것 같다. 하지만 깨달았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처럼 여전히 번뇌하고 고통받고 미숙하다. 그래서 계속해서 ‘나’라는 자아와 조화롭게 잘살아보려고 이런저런 시도를 한다.
나는 과거에 자아가 참 강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게 그냥 성격이고 ‘똥고집’쯤으로 불리는 무언가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만든 기준은 ‘매 순간 모든 것은 변한다’ 명상이 주는 진리와 정반대되는 것이었다. 매 순간 자아가 끊임없이 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왜곡되고 주관적인 가치관만을 고집했다. 그 착각이 나를 괴롭게 했고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을 상처주고 나도 상처받았다. 아직도 완전하지 못하고 어쩌면 영원히 노력해야겠지만 변화를 잘 인지하고 순응하는 삶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판단이나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존중하는 삶. 이런 시각은 상담에서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지도자 과정을 하면서 더 이상 무엇을 위한 명상을 하지 않기로 했다. 명상을 하고 마음 건강이 회복되자 욕심이 생겼다. 나도 명상을 통해 어떤 묘안을 얻고 어떤 책에서 읽은 쿤달리니도 겪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다 부수적인 것이라고 책에서 말한다. 또 한 번 아차 싶었다. 어쩌면 뼛속까지 새겨져있을지도 모르는 평가에 대한 익숙함은 알아차림이 없으면 자꾸 내 삶에서 고개를 내민다. 저번주까지 명상을 통해 알아차린 것은 ‘명상을 평가하는 것’이었다. 좋은 명상과 나쁜 명상이라는 게 존재할까. 좋고 나쁨은 내가 만든 상이다. 좋은 명상을 위해 명상을 했기에 그 동안 다양한 번뇌와 관련된 경험을 했다. 내가 요가를 좋아하는 이유는 요가에서는 잘하고 못하고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명상도 마찬가지 인데 그걸 시간차를 두고 깨달았다. 참 감사한 일이다. 평가과 판단에서 벗어나서 있는 그대로의 나와 마주하기 위해 하는 명상에서 조차도 판단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고, 나는 더이상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그럼에도 나는 또 판단하겠지만 알아차리고 흘려보낼 것이다.
어떤 것도 원인이 없이 발생하지 않고 모든 몸짓과 자세들은 그냥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상태가 몸을 통해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표현되는 것들이라는 글에서 잠시 내 몸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회사에 여분의 양말을 쌓아둔다.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양말이 축축하게 젖기 때문이다. 원래 발에 땀이 많은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잔뜩 긴장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조금만 정신 줄을 놓으면 많은 것들이 엉망이 되고 아수라장이 될 것만 같다. 그걸 처음 알아차림 했던 순간은 화장실 변기였다. 소변을 보는데 내가 종아리에 힘을 주고 까치발을 들고 있었다. 회사에서 그나마 나를 위한 시간인 식사시간과 용변(?) 시간 마저도 일에 짓눌려 힘을 잔뜻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알아차림 이후에 양말을 잔뜩 가져다 놓고 수시로 내 발을 확인한다. 발바닥의 수분감은 오늘 내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었는지 확인하는 척도가 되었다. 발이 촉촉해지면 의식적으로 일단 멈춘다. 내 몸의 반응을 무시하고 일을 해봤자 이후에 번아웃이 오면 도찐개찐이라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호흡을 바라보고 회사 안을 가볍게 산책하거나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십여분동안 멍때리기도 한다. 그렇게 하고나면 발바닥이 뽀송뽀송해진다. 물티슈로 발을 닦고 양말을 갈아신는다. 회사에서 조금 더 나를 배려해야겠다는 것도 배웠다.
일을 그만두고 싶었을 때는 파브로프의 개처럼 출근만 하면 경직되는 내 몸을 의식하면서 일을 그만둬야지만 이 불행이 끝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명상과 요가 덕분에 내 마음과 몸을 좀 더 세분화하며 관찰할 수 있었고 지금은 몸과 마음에 일어나는 변화가 조건을 기반으로 일어나고 사라짐을 안다. 고통도 끝이 없는 고통은 없으며 고통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좋고 나쁘다는 이름표를 붙이는 대신에 요즘은 알아차림이라는 표식을 붙인다. 아직 알아차림 그 자체보다는 ‘발견’같다는 생각이 강하다. 그렇게 내 몸과 마음을 보살피니 식어가는 땀처럼 일터에서도 이완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래서 요즘 엄청나게 야근을 하는데 아프지 않고 하루를 잘 보내고 있다. (예전에는 야근하면 바로 병원행)
결국 우리가 기준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들은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던 생각들이 오랫동안 학습되고 경험되었던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괜찮지 않았던 것들이 점점 괜찮아지면서 삶이 더 유연해지고 편해졌다. 예전에 나는 매우 예민하고 특히 비위가 약했다. 그런데 소위 우리가 ‘위생적’이라고 하는 것들은 오히려 화학물질 범벅이라 건강에 더 해로운 경우가 더 많았다. 위생에 대한 알아차림과 내려놓음이 삶의 다른 부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얼마전 시간에 대한 물리학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의 저자인 어떤 물리학자는 시간은 과거-현재-미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 책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우리가 감각적으로 받아들이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다 왜곡이 함께 포함되어있다는 의식이 어렴풋이 생겼다. 그리고 책을 덮었을 때 ‘나는 누구인가?’나 ‘나는 왜 사는가?’ 하는 등의 철학적인 질문을 하게 되었다. 어떤 것도 고정된 것이 없고, 시간조차 일정하거나 순서대로 흐르지 않는다니 싶었다. 그런 관점들은 내 삶에서 불필요한 짐을 덜어주었다. 아직 그 관점들이 혼란스러울 때라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면 주변에서 ‘염세적이다’, ‘곧 바위에서 물구나무를 설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틀린 것은 없고 다 소중한 경험과 생각들이었다. 얼마전부터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세상의 변화를 날씨에 비유하며 살고 있다. 언젠가 날씨를 느꼈을 때 어느 때와 같은 날씨같지만 단 하루도 똑같은 날씨인 적은 없었다. 자세히 생각해보면 정말로 비슷한 것 같아도 몇시 몇분 몇초에 그 온도 습도일 수 없다. 그런 깨달음은 신기하게도 내가 더 충만하고 나의 직관을 따르며 살도록 이끌어줬다. 삶에 대한 집착을 덜어낼수록 겉보기에는 더 열심히 살게 되었다.
얼마 전 ‘마음챙김 명상’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책에 음식 명상에 대한 내용이 있어서 재미있게 봤다. 쌀 한 톨이 우리 입속으로 들어오기까지 흙과 바람부터 시작해서 농부의 땀 등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감사한 마음으로 먹어야 한다. 여기까지는 그동안 내가 관심 가져온 다른 자료들에서 봤었다. 하지만 더 나아가 한 존재의 생명은 다른 존재의 생명을 댓가로 유지되는 것이라는 부분은 신선한 관점을 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친구와 나눈 대화에서 친구가 음식은 모두 죽음의 맛이 아니냐며 결국에 섭식 행동은 입 안에서 화려한 장례식이 치뤄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 시각들이 나에게 자극을 주어서 한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직도 그것에 대해 생각 중이지만 식물이든 동물이든 생명들은 살아가고 싶어하지 기꺼이 먹히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맞는 것 같다. 그에 대한 감사함을 잃지 말자는 게 우선 내가 내린 결론이다. 명상은 먹기명상처럼 일상에서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 우리는 단지 깨닫기만 하면 될 것 같다. 앞으로 명상을 좀 더 나의 삶으로 들여와서 명상이 내 삶인지 삶이 명상인지 잘 구분지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상 깊은 문장
모순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서 삶을 충실히 살아야 하는 이유는 삶의 속성이 상락아정이 될 수 없다는 이해에 이르기 위해서이다. 삶을 충실히 살아본 후에야 비로소 현상적인 삶에서 무엇을 성취하고 경험해도 그 어떤 것도 조건을 기반으로 일어났다 사라질 뿐 소유할 수 없고, 머물 수 없고, 근복적인 만족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149
별점
★★★☆☆ (3/5점)
: 억지로 독후감 써야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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