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평을 쓰고 싶은 건 다른 책인데 시간적 여유가 없다 보니 자꾸 얇고 읽기 쉬운 책만 올리게 된다. 아무튼 시리즈 중에 제일 재미없게 읽은 책이었다. 나에게 온 식물들은 모두 시들해졌다가 죽었다. 식물킬러인 나는 술술 읽히면서도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 이 책을 샀다. 하지만 책 내용의 3분의 1은 식물과 연관성이 별로 없다. 책의 내용이 반드시 그 책의 주제와 관련돼야 한다는 의무는 없지만, 뭐랄까. 우선 이 책을 쓰기로 계약했는데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어서 괴롭다는 내용이 많았다. 그런 내용은 한두 번의 표현만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너무 여러 번 나와서 별로였다. 그리고 저자는 인디음악을 하는 아티스트인 것 같은데, 자신의 음악에 대한 경험을 식물과 억지로 짜집기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읽으면서 종종 '음악 얘기를 왜 이렇게 장황하게 하는 거지?'싶었다. 그래서 이 얇은 책을 완독 하는데 긴 시간이 걸렸다.
사람은 책을 읽기 전과 후가 정말 다르다. 설령 그 책이 내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읽고 나면 달라진다. 책을 읽으면서 식물에 대한 비슷한 경험에 공감했다. 나도 집에서 먹은 과일의 씨앗을 발아시켜보곤 하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그리고 번개가 치는 날에는 비에 질소가 풍부하기 때문에 식물에게 빗물이 보약과 같다는 정보도 알게 됐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나서 우리 집 식물들에게 더 많은 애정을 갖게 됐고, 비 오는 날 머리에 비를 맞으면서 빗물을 모아 식물들에게 주기도 했다. 식물을 많이 키우다 보니 넓은 공간이 필요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서울이라는 걸림돌에 걸려 넘어진다'는 표현이 재밌었다. 저자처럼 나도 같은 생각을 했지만 서울을 포기할 수 없다. 자연과 시골을 외치면서도 어지간히 도시를 좋아하는 이중적인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가장 마음에 가장 와닿았던 건 식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식물들이 정신건강에 비료 같은 존재가 되어준다. 아침마다 식물들에게 인사하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은은하게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은은한 안녕감을 내 주변에 마련하고 정신건강을 챙기며 사는 모습이 나와 닮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이번 생은 한 번뿐이고 나의 결정들이 모여서 내 삶의 모양이 갖춰질 것이라는 것도 좋았다. 내 삶은 선택들이 쌓인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그 선택들이 서로 화학작용을 하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거나, 노력으로 쌓아온 값진 선택들이 한 번에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는 것도 늘 염두에 뒀다. 그래서 삶이 다채롭고 아름다운 거라고 믿고 싶다.
'모든 씨앗에는 의지가 있고 모든 이파리에는 이유가 있다.'
나는 여기서의 씨앗을 '사람'으로도 읽고, '감정'으로도 보았다. 모든 존재는 그 의지와 이유가 있다. 그게 그 존재를 지속시키는 힘이 아닐까.
책에 대한 불만과 애정이 뒤섞였던 독서였다. 얇아서 들고다니며 읽기 좋은 아무튼 시리즈는 계속 이어지고 내 관심도 계속될 것 같다. 굳이 추천하고 싶지는 않지만 읽는다고 그리 종이가 아까운 책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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