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온라인클래스에 수업 업로드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우당탕탕 업무를 봤다. 마음이 다시 초조해졌다. 이것도 해야하고 저것도 해야하는데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간다. 코로나 2.5단계 격상으로 운동도 갈 수 없고 회사와 집만 왔다갔다 했다. 언제 또 재택으로 전환될지 모르니 업무전화를 내 개인 번호로 착신전환을 해놓았다. 그래서 퇴근 시간 이후에 오는 업무관련 전화를 거를 수 없었고 그냥 받아야 했다. 어제는 그렇게 통화 몇통을 했더니 한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일이 많으면 집에 가는 걸음이 무겁다. 무겁게 걷다가 무거운 마음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한참을 좋았던 때의 사진을 구경했다. 저렇게 행복했던 날들이 또 올거야. 조금만 힘내야지 싶었다. 지하철을 타고 몇분이 채 안돼서 장갑 한짝을 역에 놓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음 정거장에서 바로 내려서 반대편 지하철을 타고 돌아갔다. 장갑은 없었다. 역무실에 연락처를 남기고 집으로 갔다.
장갑 한짝만 들고 집에 도착하니, 우편함에 장기조직기증원에서 온 기증희망등록증이 와 있었다. 잃어버린 장갑 한짝처럼 완전한 내것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피부와 장기, 젊은 시절도 내것이 아니라 매 순간 변하거나 사라진다. 내 뇌가 죽어서 활동을 하지 않게 된다면, 내 강막이나 장기들도 다른 사람의 것이 될 것이다. 완전한 내것은 내 마음 뿐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마음 공부를 하고, 마음 건강을 우선시하는 내가 참 잘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 퇴직을 고민할만큼 일이 다시 힘들었다. 그때 의지하거나 의지가 되어주며 알게 된 사람들에게 요즘 소소한 위로를 자주 받는다. 나의 아주 작은 도움에도 크게 고마워하는 사람들 속에서 감사함과 행복함을 느꼈다. 그 힘으로 다시 잘해보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오늘 나에게 ‘힘을 빼야 힘이 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해줬다. 그 말이 너무 좋았다. 너무 좋아서 일기에도 쓰고, 블로그에도 쓰고, 친구에게도 말해줬다. 내 시간을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데 쓰면, 그 사람은 자신의 존재로 나를 위로해준다. 내것과 너의 것을 구분짓는 것이 허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것을 네가 써도 아깝지 않고 너의 것을 내가 감사히 쓸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싶다. 그리고 나는 어느정도 그런 환경 속에 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이런 나는 어떻게든 잘 살 것이다. 잘 살아서 더 많은 존재들에게 도움을 주고, 나도 그 속에서 도움받으며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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