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퇴근하고 약속이 있어서 신도림역에 갔다. 시각장애인이 지팡이를 더듬으며 길을 찾고 있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그분이 잘 가고 있는지 지켜봤다. 혹시 잘 찾아가고 있는데 괜한 배려를 베푸는 걸까 봐 선뜻 도와드리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분은 1호선으로 가는 계단에서 한번 돌아서더니 반대편 화장실 앞에서 멈췄다. 어디 가시는지 여쭤봤다. 2호선을 타고 싶다고 하셨다. 그분은 정중하게 내게 팔꿈치를 잡아도 되는지 물었다. 사실 소심하면서 한편으론 용감하기도 한 나는 머뭇거리면서도 이런 경험을 자주 한다. 그런 경험을 할 때마다 다른 사람에게 내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게 감사하다. 작은 배려가 상대에게는 편안함을 주고 나에게는 작은 기쁨을 준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이런 도움을 주는 것도 받는 것도 더 어려워졌다. 코로나는 코로나이고 나는 그냥 어제의 팔꿈치 같은 사람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작은 배려를 하고 그걸 자랑스러워하면서 자아도취하는 팔꿈치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싶었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줬으면 좋겠다. 나를 있는 그대로 평가하지 말고 봤으면 좋겠다. 근데 나도 못한다. 잘 듣는 것도 어렵고 상대를 평가하지 않는 것도 어렵다. 연습이 많이 필요한 부분인 것 같다. 요즘 명상을 띄엄띄엄해서 그런 것 같다. 내게 필요하지만 급하지 않는 것들을 잘 챙기며 살아야겠다. 일기가 아닌 다짐 목록이 된 것 같은 오늘의 일기.
p.s. 20.7.26.에 적은 일기 한 줄 : 오늘 새벽에 가장 먼저 떠오른 말 '같은 초록도 그 깊이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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