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은 좀 공감할 수도 있는 말을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다.
엄마가 돌아가실 때 다음 생에는 친구로 만나자거나, 내가 엄마하고 엄마가 내 딸 하라는 말이었다.
나는 나에게 많은 기대를 하고 정서적으로 의지하는 엄마를 버거워했다.
그런 엄마에게 양가감정이 생겼고 한동안 엄마를 사랑하면서 미워했다.
성격심리학 수업에서 교수님이 부모를 미워하는 사람은 미워하지말고 안쓰러워해야 한다고 했다.
부모님도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나서 처음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미숙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처음 부모가 되어 실수 투성이인 그들에게 고마움과 안쓰러움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이 강하게 남았다. 그리고 엄마를 엄마로서가 아닌 나와 동등한 한 존재로 보기 시작했다. 엄마도 내 나이일 때가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새로웠다. 그 이후부터 엄마를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진솔하게 사랑할 수 있었다.
영화 '쁘띠 마망'은 외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엄마와 함께 시골집에 내려온 8살 넬리의 이야기이다.
넬리는 엄마가 어린 시절 만들었다는 오두막을 찾아 숲속을 헤매던 중 엄마와 이름이 같은 동갑내기 친구 마리옹을 만나게 된다.
잔잔한게 딱 전형적인 프랑스 영화이다.
나른하고 졸릴법한 분위기에 낙엽들을 보면서 즐거웠다.
상영시간은 72분으로 짧은 편이다. 오히려 짧아서 다행이라고 느낄 수 있다ㅋㅋㅋ (난 너무 좋았다)
영화는 칸영화제 수상작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셀린 시아마 감독의 연출작이다. 어쩐지 영화 '톰보이'가 잠깐 생각났다. 정세랑 작가가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에서 한 문단만 읽어도 '아, 이거 그 사람이 쓴 거잖아,' 하고 바로 알아볼 수 있는 그런 작가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감각적이고 즉각적이면서도 쉬이 잊히지 않는 어떤 것
셀린 시아마 감독의 작품에는 그런 힘이 있는 것 같다.
나와 동갑인 엄마를 만나서 이야기해볼 수 있다면 난 무슨 이야기를 할까.
딱 가을에 가을의 영화를 봐서인지 내년 가을에도 다시 꼭 보고싶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내 잃어버린 가을과 가을을 보내기가 더 힘들게 하는 생일.
그 슬픈 생일의 기억에 엄마도 있었다.
그 기억에 대해 같이 영화를 봤던 UB에게 처음 이야기를 해봤다. UB는 그 이야기를 듣고 속상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아, 내가 속상해도 되는거였구나' 싶고 마음으로 공감받는 경험이었다. UB는 전형적인 프랑스영화였고 생각보다 별로라고 했다.
영화 속에 마리옹의 소소한 생일파티 장면도 있어서 난 더 애정이 갔다. 내년 생일에 또 보고싶은 잔잔하고 따수운 가을 영화라 난 추천하고 싶다.
아마 <톰보이>를 재미있게 본 관객이라면 즐겁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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