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소설은 잘 안 읽는다. 관심 가는 정보를 주는 책을 많이 읽는 것 같다. 올봄에 가장 최근에 읽은 소설이다. 나는 평소에 책을 동시에 여러 권 읽는다. 내 동선에는 읽던 책들이 허물처럼 놓여 있다. 이 책은 두꺼워서 집에 두고 침대에서 읽었다. 책 표지가 별로 안 예뻐서 손이 잘 안 갔다. 겨울에 사서 봄에 읽기 시작했다.
70대의 생태학자가 쓴 소설이다. 습지에 대한 묘사가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다. 덕분에 책이 잘 읽힐 때는 침대에서 바다와 습지를 머릿속에 그릴 수 있었다. 나는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은 나의 일부이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것을 깨달은 사람은 자연에게 감사할 줄 알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안다. 환경을 생각하는 것은 나를 생각하는 것이다. 환경을 소중히 하면 나와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소중히 하는 것과 같다.
코로나로 자주 가지 않던 국내 여행을 가끔씩 했다. 양양을 몇번 갔는데 죽도해변 바다는 너무 아름다웠다. 지금 이 글도 죽도해변 근처에서 쓰고 있다. 감사하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지혜를 알아차리고 배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들은 낚시할 때 말고는 습지를 제대로 보지 않거든. 매립해서 개발해야 할 황무지라고 생각하지. 바다생물한테 습지가 필요하다는 것도 몰라. 자기네들이 그것 때문에 먹고 살면서
새들이 주로 새벽에 노래하는 이유는 서늘하고 촉촉한 아침 공기가 자신들의 노래와 의미를 가장 널리 퍼뜨리는 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평생 이런 기적 같은 현상들을 눈높이에서 보아왔기에 자연의 섭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오늘 제대로 탄 파도가 하나도 없었다. 내 실력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탈만한 파도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덕분에 잔잔한 바다에서 보드 위에 고요히 누워있을 수 있었다. 바다와 하늘을 보면서 울었다. 울고나니 한결 가벼워졌다. 파도가 날 위로해준다고 믿었다.
문제가 생기면 그냥 손을 놔. 다시 자연스럽게 떠내려가게.
인도 경전 「아슈타바크라 기타」에 이런 말이 있다.
'삶의 파도들이 일어나고 가라앉게 두라. 너는 잃는 것도 얻는 것도 없다. 너는 바다 그 자체이므로.'
이 말이 자주 생각났다.
카야는 주인공 소녀이다. 소설은 엄마가 카야를 떠나는 모습을 시작으로 가족들이 하나 둘 떠나가는 모습을 하나씩 덤덤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혼자가 된 카야는 습지에 혼자 살면서 갈매기와 친구로 지내면서 외로움을 견디다가 음미하다가 삼켰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외로움이라는 감정 덕분에 인간이 무리를 형성하고 생존에 유리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인간은 죽기 직전까지 인정받고 싶어 하고 외롭고 싶지 않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외로움과 함께 하면서 함께하지 않는 삶을 잘 꾸려야 한다.
안전하게 몸을 사리고, 삶을 살아가며 보관할 수 있는 크기로 감정을 잘게 자르는 데는 도가 텄다.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다는 소박한 희망, 누군가가 자신을 진심으로 원하고, 어루만져주고, 끌어당겨 품어주면 좋겠다는 소망.
마을 사람들은 카야를 마시걸이라고 불렀다. 마시걸은 비하 표현인 것 같다. 카야는 그들의 눈에 야생에서 방치된 미개한 사람이었다. 카야는 문명화되지 않았고 의무교육을 받지 않았을 뿐인데 그랬다. 카야는 그런 카야를 좋아하던 테이트에게 책을 선물 받고, 책 읽는 법을 배운다. 무언가를 배우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다. 강요된 배움이 힘든 거다. 나도 학창 시절에는 공부를 싫어했다. 배움의 즐거움을 강요에서 벗어났을 때야 깨달았다. 병든 닭처럼 억지로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 그 즐거움과 무한한 가능성과 더 멀어지는 것 같아서 슬프다. 배우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의 눈은 반짝거린다. 나는 그 눈빛들이 좋다. 내 눈도 그렇게 빛났으면 좋겠다. 할머니가 되어도.
카야는 4년 더 공부해야 배울 내용을 꾸역꾸역 읽었다. "걱정 마. 읽을 때마다 조금씩 더 잘 이해하게 될 테니까." 테이트의 말은 사실이었다.
뭐든 읽을 수 있게 되면 모든 걸 배울 수 있어. 이제 카야에게 달린 거야. "우리 두뇌는 아무리 빨리 써도 도저히 꽉 채울 수 없거든. 우리 인간은 마치 기다란 목이 있으면서도 그걸 안 써서 높은 곳에 있는 잎사귀를 따먹지 못하는 기린 같은 존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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