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고추가 맵다더니 이 작은 책이 내 마음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구구절절 내 심금을 올렸다. 그래서 서평보다는 메모와 기록이 압도적이다.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면 심하게 반갑다. 저자도 책에서 놀라운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서 그 충격으로 감전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책에서 본 좋은 것을 세상에서 볼 수 있다면 좋다고 했다. 이 세상에 좋은 것은 결국 우리 안에 다 있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타인들은 존재한다고 했다. 나는 그런 타인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그런 타인들이 내 주변에 가득하다. 너무 복 받은 인생이다. 이 책을 만나 읽게 된 것도 행운인 것 같다. 읽는 내내 행복하고 즐거웠다. 나와 잘 맞고 닮은 구석이 많은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된 기분이었다.
나도 평소에 메모를 자주 한다. 나의 메모는 뒤죽박죽한 내 삶과 닮은 모습이라 지저분하다. 하지만 그 메모들이 나를 잘 챙겨주기도 하고, 나를 위로해주거나 감동을 주기도 한다. 내가 쓴 메모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이런 생각을 했나 놀라기도 하고, 같은 생각을 여러 번 반복하고 있다는 것에도 놀란다. 저자는 메모가 자기 생각을 가진 채 좋은 것에 계속 영향을 받으려는 삶을 향한 적극적인 노력이라고 했다. 메모는 내게 삶을 향한 재료로 사용된다. 메모를 하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더 나은 생각을 찾아내고, 더 나은 삶을 꿈꿔보게 한다. 같은 의미로 저자는 메모는 삶을 위한 예열 과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메모 중에 가장 좋은 것은 삶으로 부활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살지는 몰라도 쓴 대로 살 수는 있다며 자신의 메모에서 아리스토의 말인 '할 수 있는 한 자신 안에 있는 최선의 것을 따라 살라'고 했다.
나의 내일은 오늘 내가 무엇을 읽고 기억하려고 했느냐에 달려 있다. 내가 밤에 한 메모, 이것으로 나의 내일이 만들어질 것이다. p. 35
당시 노트에 쓴 것들이 무의식에라도 남아 있으리라, 나는 믿는다. 어느 날 무심코 한 내 행동 속에서 그 모습을 그러낼 것이라 믿는다. 이게 메모를 하는 가장 큰 이유인지도 모른다. 무심코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 좋은 것이기 위해서. 혼자 있는 시간에 좋은 생각을 하기 위해서. 그런 방식으로 살면서 세상에 찌들지 않고, 심하게 훼손되지 않고, 내 삶을 살기 위해서. p. 36
우리는 단어를 읽지만 그 단어를 살아낸다. p. 38
특히 메모는 내가 시간에 대해 자각하게 해준다. 저자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자신의 메모에서 세네카가 삶이 짧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시간을 낭비한다는 말을 인용했다. 우리는 꼭 해야 할 일을 잘 해내고 살기에도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하다. 생은 짧고 젊음은 더 짧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모는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점검하게 해 주고, 앞으로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도 알려준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내 생각의 자리를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만다. 결국은 대다수의 시선에 의존적인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어쨌든 사회 속에서의 삶이 수동적일수록 능동적인 부분을 늘릴 필요가 있다. 사회가 힘이 셀수록 개인이 자기 자신으로 사는 사적 자유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p. 45
메모를 하는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자신에게 선물하는 셈이고 결과적으로 메모는 '자신감' 혹은 '자기존중'과도 관련이 있다. 스스로 멈추기 때문이다. 스스로 뭔가를 붙잡아서 곁에 두기 때문이다. p. 45
비행기가 날아오를 때 활주로가 필요하듯 우리도 날아오르려면 토대가 필요하다. 그 토대는 자신이 택한 삶의 새로운 원칙과 새로운 '시선'으로 가득 찰 수록 좋다. 『우주만화』에서 이탈로 칼비노가 말한 것처럼 자기 자신의 변화라는 최초의 진정한 변화가 있어야 다른 변화가 뒤따르기 시작한다. 세상 무엇도 인간이 변하기 전에는 변하지 않고, 새로운 인간이 된다는 것은 매일매일의 '단련'의 결과다. p. 47
우리는 그냥은 살지 않는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자신을 맞춰가면서 산다. 마치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키면서 살아가듯이. 지금과 다른 것에 관심을 갖는다면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우리가 가치를 두는 것은 외부를 바라보는 시선뿐 아니라 심지어 우리의 얼굴과 몸짓, 표정, 눈빛마저 바꾼다. 나의 가치는 내가 중요하게 여기고 살리는 이야기의 질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p. 48
저자의 사람이나 관계에 대한 시선도 나와 닮은 부분이 많았다.
나는 이 사회와 닮지 않은 사람이 좋고 그런 사람을 만나고 알게 되는 것이 가장 재미있다. 그런 사람들은 실제로 존재한다. p. 51
나는 당신 때문에 변했어요. 당신은 나를 바꾸어놓았어요. 당신은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게 해요. p. 52
모름지기 영혼은 향이 나야 한다. 모름지기 사람의 눈은 빛이 나야 한다. p. 58
감동은 항상 몸의 접촉에서 태어났어요. 횡단보도 맞은편에서 흔들던 손, 눈곱을 떼주고 침을 닦아주던 손, 추운 날 지퍼를 올려주던 손, "오늘 힘들었어?" 하며 잡아주던 손. 따뜻한 뺨, 안을 때 체온, 기댈 수 있는 어깨, 다독여주던 목소리. p. 119
"너를 잃어서 얼마나 슬픈지 몰라"라고 할 때 우리가 슬퍼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할 때 사랑하고, 손잡고 싶을 때 손잡고, 전화하고 싶을 때 전화하고, 슬플 때 슬픔을, 기쁠 때 기쁨을 나눌, 외로울 때 외로움을 나눌 몸의 부재다. 더 이상 만질 수없고 볼 수 없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p. 78
네루다의 시구가 떠오른다. "내 사랑이 너를 지켜줬으면 좋겠다." p. 164
게다가 자연을 사랑하는 모습까지 공감가는 부분도 많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저자의 시선에 감동받기도 했다.
파도가 곱게 만들어준 하얀 조개껍데기들 위에서 책을 읽었다. 세상은 숨 막히게 아름다웠다. 생명력 때문이었다. 나는 이런 감각적인 외부 세계가 주는 기쁨을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 생명력을 도시로 데리고 가고 싶었다. 야생의 생명력이 나를 바꾸기를 원했다. 자연은 그것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을 좀 더 자연에 가깝게 바꿔줄 줄 안다고 했던가? 나는 자연이 바꿔놓은 사람 자연의 작품이 되고 싶었다. 더 있는 그대로 감탄하고, 더 소박하게 원하고, 더 섬세하게 염려하고, 더 감사하면서 기쁨을 누리고, 평범하고 흔한 것을 경이롭게 바라볼 줄 아는 사람으로. 이탈로 칼비노의 말이 떠오른다. "해답이 아니라 경이로움을 즐기라." 나는 지칠 대면 속으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 '지금 어디선가 고래가 숨 쉬고 있다! 지금 고래가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고래처럼 깊게 숨을 쉰다. '나는 너와 함께, 너처럼 힘을 낼 거야.' 고래처럼 물 밖으로 솟구쳐 태양을 향해 뛰어오를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p. 97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다. 지금 어디선가 고래 한 마리가 숨을 쉬고 있다. p. 112
바람이 이렇게 말해주었다. '순간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니까.' 커다란 나무가 내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세상엔 슬픔이 많아. 기쁨을 소홀히 하지 말라니까.' 나는 그 충고를 일생에 걸쳐 셀 수 없이 많이 잊고 살았다. p. 130
많은 좋은 것이 반자본주의적이다. 우리는 돈이 안 되는 것을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돈이 안 되는 것들의 도움으로 산다. 무화과 냄새, 라일락 꽃향기, 재잘재잘 새소리, 바다의 즐거운 에너지, 하늘에서 떨어지는 꽃잎, 그리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사랑의 수많은 모습들. p. 54
이렇게 메모를 통해 우리는 자신과 타인을 만나고 자연과 세상도 본다. 메모와 함께 나만의 단어를 갖고 그 단어를 살아가는 여정이 앞으로도 즐겁길 바라며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행복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놀라운 우여곡절 끝에 정직한 통로를 거쳐서 찾아온다는 말이 있다. 그 정직한 통로라는 말이 얼마나 심오한 것인지 마음으로 알게 되는 날이 있을 것이다. p.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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