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사랑하는 식당
오늘 갑자기 약속이 취소됐다. 하루가 통채로 빈 날이 정말 오랜만이었다.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일은 많았기에 몸은 침대에 있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분주했다.
린 셰프가 사줘야 읽는다며 사달라고 했던 책을 줘야겠다 싶어서 저녁 시간 쯤 들렸다가 오랜만에 밥도 먹었다.
원래 저녁에는 코스요리만 주문할 수 있는데 세트 메뉴와 단품으로 주문이 가능하게 바뀌었다. 코스요리를 좋아하던 사람들(은 나)은 좀 아쉬울 수 있다.
이번달 내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던 내가 월말이 되자 고장신호를 발견하게 되었다. 몸도 마음도 조금씩 균열이 나고 있었다. 먹먹하고 지친 상태였다. 병원에서는 요가를 잠시 쉬라고 했다. 학교에서는 너도 나도 상담해달라고 한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일은 더 쌓여만 가고, 지친 마음을 요가로 풀어도 요가로는 채워지지 않은 부분이 생기면서 ‘자연이 보고싶다.’ ‘도망가고 싶다.’ ‘사라지고 싶다.’는 외침이 마음에 머물렀다. 그런데 왼쪽 골반이 고장이 났고 병원에서는 운동을 쉬라고 했다. 마침 선물같이 일요일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고 천년식향에 갔다. 공간도 공간이지만 내가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음식도 안식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얼마 전 SBS 프로그램 <맛있는 녀석들>에 출연해서 더 유명해진 맛집 중의 맛집. 너무 좋아하면 나마 알고 싶은 이상한 욕심이 나긴 하는데 여기는 유명해지니까 너무 자랑스럽고 좋다.
맨 앞장은 맛있는 녀석들 프로모션 세트이고 한장 넘기면 기본 세트 메뉴가 나온다.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을 위해 욜로 세트 메뉴가 있다. 둘 중에 하나 먹으려다가 내가 먹어보고 싶었던 단품이 있어서 내추럴와인 한잔을 포기하고 ㅋㅋㅋ 단품으로 주문했다.
여기서부터 단품 메뉴가 주문이 가능하다. 원래는 점심에만 단품으로 주문이 가능했는데 이제는 저녁에도 단품 주문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또 하나의 변화는 메뉴 종류가 변했다. 네가지 종류였던 피자는 두가지로 줄어들고 채소요리는 연시 사시미 등 작년 크리스마스 스페셜 메뉴에서 인기 있었던 것들이 기본 메뉴에 들어왔다. 나 작년에 스페셜 메뉴 먹고싶은데 시간이 없어서 우울했는데 왜 그렇게 우울해한건지 약간 허탈하다.
아직 안 먹어보고 너무 먹고 싶은 메뉴는 가지요리!! 트러플 아이스크림도 먹어보고 싶다.
그리고 단품으로 주문하게 한 장본인은 프렌치 퍼플 라벤더 아이스크림과 자스민 아이스크림 (진짜 엄청난 선택이었다. 이거 주문한 나 너무 사랑해)
여기는 차도 고퀄이다. 블렌딩 티라 더 특별하다.
내추럴와인 보틀로 주문하려면 마지막 장을 보자.
나는 린 셰프 덕분에 내추럴와인을 알게 되었다. 천년식향이 내추럴와인을 추구하는 이유는 첨가물의 최소화, 친환경적 재배, 손 수확, 소규모 생산이기 때문이다. 린 셰프의 요리와 결이 맞다. 이 모든 과정은 포도 발효의 다양성을 담아내고, 포도 농장의 신성함을 표현한다.
욕망을 해소하면서 힐링할 수 있을까
인간도 음식의 재료도 본래 자연의 일부이다. 자연의 비정형성. 날 것이 주는 들뜬 감정과 그 안에서 편안한 나.
채소의 가치는 얼마인가. 왜 사람들이 채식을 ‘풀떼기’라며 부정적인 판단을 덧씌우는가.
(내 기준) 천년식향 피자가 이 세상 피자 중에 제일 맛있다. 유기농 발효 도우는 부드러운데 자극적이지 않고, 다른 재료들은 조미료없이 정성으로 자극적인 감칠맛을 낸다. 그래서 도우 위에 다른 재료들을 올려 먹으면 천국이다. 게다가 내추럴와인 페어링하면 기분이 거의 국가가 허락한 마약 수준 ㅋㅋㅋ
버섯 크리머리 피자에는 로제나 오렌지 와인을 추천한다고 하시고 오렌지 와인을 받았다. 너무 잘 어울린다. 실장님이 내 와인 취향 ( 가벼운데 향은 다채롭고 드라이한 것을 좋아함)을 알고 계셔서 음식과 잘 어울리는 와인을 딱 내어주셨다. 오늘 내 생일이냐구. 마음 속으로 오열하면서 너무 맛있게 먹었다.
저녁 먹으러 천년식향 간 사람들 모두 이거 먹어줬으면 좋겠다. 내 뒤에 앉은 테이블에서 주방 마감 후 이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려다가 못해서 너무 아쉬워했다. 직접 키운 프렌치 퍼플 라벤더 잎으로 만든 아이스크림과 자스민 아이스크림.
너무너무 맛있고 행복했다.
저 발자국 뭔데.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심장이 아팠다. 나무 모양이 라벤더 아이스크림이고 그 옆에 동글동글한 게 자스민 아이스크림이다.
자스민 아이스크림은 크리미하지만 식감이 약간 셔벗 같다. 향과 달콤함의 조화가 너무 적절하고 내 취향이었다. 올라간 허브는 처빌과 애플민트. 과일은 키위와 블루베리. 석류가 있었다. 다같이 올려서 먹는 것도 맛있고 아이스크림만 먹어도 맛있다.
두 아이스크림이 텍스처가 많이 다르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라벤더 아이스크림은 생크림을 압축시켜서 얼려놓은 것 처럼 아주 단단하고 잘 녹지도 않았다. 반면 자스민 아이스크림은 부드러운 크림인데 크림아이스크림보다 셔벗류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을 듯한 식감이었다. 내 취향은 자스민! 너무너무 맛있고 허브가 주는 행복을 가득 머금을 수 있었다.
너무 예뻐서 친구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줬는데 아까워서 어떻게 먹냐는데 ㅋㅋㅋㅋ 한그릇 뚝딱 (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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