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상담은 영양제를 챙겨 먹는 행위와 같다. 안 먹어도 문제없지만 먹으면 더 건강해지고, 밥맛도 좋아지며 삶에 전반적으로 생기가 생긴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거울을 잘 닦아줘야 한다며 상담자의 개인상담의 중요성에 대해 학부시절부터 자주 들어왔다.
나는 상담교사로서 꾸준히 슈퍼비전을 받고 있고, 개인상담도 매년 받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상담자로서 유능해지려는 명분보다는 주로 내 마음이 괴로워서 상담을 받아왔다. 그리고 아직까지 내 마음을 온전히 다 보여줄 잘 맞는 상담사는 찾지 못했다. 그래서 매년 상담사를 바꿨고 올해도 새로운 상담 선생님을 만났다. 이 선생님은 나와 경력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분이다. 그래서 내가 상담교사라는 사실에 부담을 느끼시는 것 같았다. 그 부담감을 상담 장면에서 나도 고스란히 느꼈다. 말문이 턱 막혔다. 아 이번에도 꽝인가 싶었다. 어찌 됐든 난 올해 이 선생님과 내 마음속을 여행할 거니까 저 선생님을 못 믿겠으면 나를 믿고 가보자 싶었다. 그래서 1회기에 시간에 쫓기는 사람처럼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상담 목표를 가지고 왔는지 열변을 토했다. 그동안 받았던 심리검사 결과지도 복사해갔다. 나에 대한 최대한의 정보를 제공하고 내가 인식하지 못한 나의 일부를 해석해달라는 마음이 컸다. 그렇게 1회기를 마치고 나니 급격하게 피로가 몰려왔다.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열심히 일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2회기에는 맘편히 갔다. 내가 채식을 하면서 받았던 스트레스에 대해 주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나서 나의 기분보다는 상대의 기분을 더 우선시하는 패턴을 발견했다. 그래서 상담의 마무리는 나를 더 존중하자!로 마무리되었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최근에 다녀온 3회기에는 일에 대한 책임감과 관계에 대한 책임감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 동안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기 어려웠던 이야기도 꺼내보았다. 아직 이 선생님을 완전히 신뢰하는 것은 아니라서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자격을 갖춘 한국상담심리학회 소속 상담사가 아닌가. 그것만으로도 우선 비밀보장은 철저하게 될 것 같아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내가 이야기하기 꺼려했던 마음을 읽어주셨고 본인이 아는 정보를 알려주셨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내 내담자들이 생각이 났다. 말하기 어려웠던 것들을 나에게 꺼내 보이며 어땠을까. 내가 하는 일이 꼭 필요한 일이고 나는 잘하고 있다는 생각도 했다. 앞으로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겠지만 내 존재로 도구가 되어 말하기 힘든 이야기를 담는 안전한 그릇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상담받는 것도 좋고, 공부하는 것도 재밌다. 문제는 상담하는 것은 너무 힘들다. 아니다. 체계가 없는 학교 상담 장면에서 과도하게 상담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 그래도 또 일년이 지나간다. 또 다가올 일 년도 올해의 나보다 더 나아질 거라 믿으며 다음 4회기 상담을 기다린다. 조금 더 경험하고, 조금 더 인내하고, 조금 더 늙은 나를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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