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 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어제 부장님이 퇴근 길을 함께 해주셨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생각나는 시가 있다며 오늘 프린트해주셨다.
그 시는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시인은 안양천변 판잣집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집에서 똑똑하고 감수성이 풍부했던 기형도는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중앙일보 기자를 하다가 29살에 영화관에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다.
아버지가 뇌졸증으로 쓰러지시고 어머니와 누이가 생계를 위해 일을 하는 상황 속에서 여린 아이는 시험을 잘 봐서 상장을 받아오지만 가족들의 관심이나 칭찬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그 상장으로 종이배를 만들어 안양천 개천에 띄웠다고 한다. 그 유년의 우울함과 결핍이 녹아든 시였다.
살아가면서 내가 바라는 것이 다른 사람처럼 살거나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이라면 그것은 '질투'의 힘을 원동력 삼아 겨우 버티며 사는 삶이다.
이 시는 청춘이 범하기 쉬운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질투'는 나는 못났고 남은 잘났다는 것을 인정하는 감정이다. 그리고 남의 인정을 받기 위해 끝없이 노력한다. 시에서는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로 표현하고 있다. 그렇지만 사실 자세히 보면 사람들은 나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 타인에게 사랑받고자 하지 말고 스스로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기형도의 후회를 읽으면서 여러분은 여러분 스스로가 인정하는 삶을 사시기 바란다는 부장님의 말씀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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